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면서 여러 인상 깊은 구절들이 있었지만, 특히 두 가지 키워드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나는 오리지널리티, 다른 하나는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표현이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책을 읽으며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이다. 이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올리버 색스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이 함께 소개된다.
창조성에는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특징이 있으며, 강고한 아이덴티티와 개인적인 스타일이 있어서 그것이 재능에 반영되고 녹아들어 개인적인 몸과 형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이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견해를 타파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면서 마음속으로 완전한 세계를 수없이 다시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항상 비판적인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확실히 ‘오리지널리티’라는 개념을 아주 멋지고도 깊이 있게 풀어낸다. 하지만 하루키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바라본다. 그는 “무엇을 더할까?“보다는 “무엇을 덜어낼까?“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복잡한 것을 더하는 대신,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방식 속에서 자신만의 신선한 스타일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게 바로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라고 이야기한다.
이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우리 대부분은 ‘창조’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루키는 ‘단순화의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신다움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 창조성이 아닐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개발자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때, 덧붙이기보다는 걷어내는 감각을 좀 더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우리 팀은 매달 ‘갓생살기’라는 이름으로 작게나마 개인 목표를 정해 실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주 3~4회 운동하기 같은 목표다. 흥미로운 건 목표가 없을 때는 운동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해야지’라는 생각은 있지만, 정해진 틀이 없으면 결국 안 하게 된다.
하루키는 매일 일정 시간 수영이나 달리기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글을 쓰기 위해 체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앉아서 글을 쓰는 작업을 오래 지속하려면, 그만큼의 신체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 단순한 건강관리 차원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루틴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일을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즉 본능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다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이 표현은 어쩌면 조금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 내 삶의 리듬을 지탱하는 일?”
나는 프로덕트 개발자다.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도 성장을 고민하고, 코드의 구조를 고치며 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 중 어떤 것들이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일까? 내가 계속해서 몰입하게 되는 것, 나만의 감각을 축적해나가는 작업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붙들게 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단순히 작가의 창작 이야기를 넘어, 삶을 어떻게 꾸준히 밀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소설가라는 직업보다 개발자라는 내 위치에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그리고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언젠가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쌓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는 내 삶의 한가운데에서 “이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말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행위 돌아보기 > 독후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AI 시대의 문해력, 프롬프트로 시작하다 - '최고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강의'를 읽고 (1) | 2025.03.31 |
---|---|
설계의 함정 - 소프트웨어 설계의 정석을 읽고 (0) | 2025.03.16 |
[똑똑한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하는가?] 리뷰 - 이시한 (2) | 2024.07.21 |
제멋대로 고집쟁이 개발자가 읽어본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1) | 2023.11.11 |
산만함, 산만함, 산만함 [도둑맞은 집중력] 책을 읽고 (0) | 2023.06.18 |
댓글